*드라마타이즈(Dramatize) : 영상의 드라마화. 이 글에서는 뮤직비디오가 드라마로 구성되는 것을 일컫는다.
꽤 자주 말한 주제지만 드라마타이즈로 얻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 먼저 내야 진행되는 이야기.
간단하게 세계관 떡밥을 위해서인데, 줄여 말하기에는 쉽게도 장황해지는 얘기라 벌써 골치가 아프다.
드라마타이즈의 의도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요즈음 드라마타이즈는 아이돌 세계관과 연관 없는 케이스가 드물다. 그 수준이 그룹 활동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스케일의 스토리냐, 아니면 앨범 두세 개에 걸쳐 완결되는 프로젝트 스토리 아니면 한 활동에 그치는 단발성이냐 정도의 차이?
즉 아이돌에게 가상의 스토리텔링을 부여하기 위해 뮤직비디오에서 드라마타이즈를 활용하는 것은 무척 흔한 일이 되었다.
단순히 바라보면 소비자가 흥미를 가질 요소를 경쟁력 있게 어필하려는 궁리 끝에 이런 흐름이 이루어진 것이고, 그 흐름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티저와 뮤직비디오인 상황이다.
그리고 이 글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마치 만화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와 착각을 안겨주는 장치가 매우 대중화된 이 흐름이 진심으로 반갑지 않은 사람의 글이다.
말했듯 드라마타이즈는 대개 세계관을 위한 것이고 세계관은 그저 컨셉이다. 우리나라 아이돌은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매우 다분히 해내는 가수이며 세계관은 엔터테인의 영역이란 것을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테고, 그럼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는 그다지 문제 삼을 게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은 댄스 가수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여기서부턴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엔터테이너와 댄스 가수 중 어떤 역할이 우선되어야하는지로 생각이 꽤 갈라질 수 있는데 이미 적어놨듯 주장하고 싶은 건 후자다.
물론 드라마타이즈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게 사실이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드라마타이즈 퇴출! 을 외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컨셉과 세계관을 무척 즐기는 사람들의 존재도 알고 있고 아이돌 시장과 영상물의 특성상 일체의 드라마타이즈를 용납하지 못하겠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이런 부가요소 없이도 뮤직비디오는 충분히 훌륭할 수 있다. 부가 요소를 활용해 훌륭한 뮤비를 만들 수도 있지만 댄스 가수로서의 매력어필을 포기하면서까지 드라마타이즈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못해 비관적이다.
퍼포먼스 하나 나오지 않는 뮤직비디오를 보면 매력을 위해 컨셉을 활용하는 모습이 아니라 컨셉에 매력이 매몰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세계관을 위한 스토리텔링에 충실한 영상은 나름의 미장센과 스토리를 가진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가수로서의 매력 없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물론 아이돌은 음악방송에 출연하지만 대부분 뮤비로 노래와 퍼포먼스를 처음 접하며 결정적인 흥미가 결정되는 게 대부분인데 이걸 포기하고 무대집착빠순이가 이걸 납득한다?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영상의 객체가 아티스트가 아닌 순간 느껴지는 위화감이란. 주로 드라마타이즈로 이런 상황이 연출되기에 글의 주젯 거리가 되었지만 아이돌 뮤직비디오에서 퍼포먼스 어필을 방해하는 조건 전부를 겨냥하는 글이다.
뮤비만큼 가수의 퍼포먼스를 멋있고 효과적으로 보여줄 곳은 없는데 이걸 포기한다는 건 언제 봐도 경악스럽기 때문이다. 애당초 컨셉이 필요한 이유가 노래와 가수를 좀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인데 가수가 아니라 컨셉이 더 돋보이고 주가 되는 상황이 넌센스다.
+이 드라마타이즈를 제한 없이 허용할 수 있는 때와 장소는 바로 티저다. 티저에서만 열심히 세계관을 활용하고 뮤직비디오에선 적당하게 손을 떼는 게 가장 이상적인데, 티저는 재미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므로 주로 팬들이 접하고 즐기며 뮤직비디오와 활동이 시작되면 소모품처럼 유효기간이 끝나기 때문이다.
세계관이란 이름의 컨셉이 주가 되어 벌어지는 케이스(=드라마타이즈가 다이거나 비중이 매우 높은 뮤직비디오)는 기준 이상의 영상미와 스토리는 갖췄다는 전제하에 크게 두 개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 : 컨셉으로 나름의 메시지를 만들어 아티스트가 메시지를 위한 도구가 된다.
드라마타이즈를 의도에 맞게 활용하는 사례다. 전하고픈 메시지에 맞는 컨셉과 표현을 만들어 전달하는 어찌 보면 아티스트다운 행보인데, 아이돌과 아티스트는 대척점을 이루면서도 요즘엔 그 경계선이 나름 흐릿해진 상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영역이며 개인적으로 무대에서의 매력은 아이돌/아티스트를 떠나 가수의 기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퍼포먼스를 아예 놓아버려도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예 단편 격 드라마를 만드는 일도 있는데 영상으로 어필되는 객체가 가수가 아닌 스토리와 메시지가 된다는 점 또한 왠지 삐딱한 시선을 하게 만든다.
두 번째 : 마땅히 의미 있는 메시지 없이 컨셉에 묻히는 영상이 된다.
결과물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보기 쉬운 것은 개성 있는 컨셉을 어필하려는 의도하에 벌어지곤 하는 케이스. 대충 컨셉을 좇다가 벌어지는 참극으로 많이 겪게 된 일이다. 노래와 어울리는 분위기와 컨셉의 중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컨셉 외의 매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어 컨셉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매우 치명적이다.
이런 선택도 때에 따라선 중요하나 그것도 결과물이 따라줄 때의 이야기이고 자극적인 컨셉은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는 점을 감수해야 해서 이것대로 까다롭다.
그리고 그중 가장 최악은 그냥저냥인 컨셉으로 그냥저냥인 드라마타이즈를 하는 것과 작품병에 걸린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다.
가장 최악인 이유는 득인 부분이 없으면서 개선의 여지도 불투명하기 때문.
자극적인 컨셉은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일단 눈길을 끌 수 있다는 장점이라도 있지만 특별날 것 없는 컨셉으로 그냥저냥 드라마 타이즈.. 표현만 보고는 특정 작품을 연상하기 힘든데 이게 최악이란 증거나 다름이 없다. 또 완성도 높은 경우가 드문데, 뮤직비디오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갖다 붙인 연출이라서다.
아이돌 활동에 중요하지 않은 때란 없는데 구색 맞추기에나 급급한 뮤직비디오를 내놓고 있다면 소속사에서 아이돌을 띄울 맘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접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론 띄울 맘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더라.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만든 작품병.
아이돌은 가수이고 대중문화에 속해있지 현대 예술계에 속하는 직업군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의도는 없으나 뮤직비디오로 난해한 시도를 하는 의도부터 이해하기 어려운데 난해함은 멀리 있지 않다. 한껏 공을 들인 영상의 주인공이 엉뚱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영상의 주인공이 아이돌이 아니라는 점에서 첫번째로 언급했던 메시지 전달용 드라마타이즈의 케이스와 닮았지만 극과 극이 통하는 것과 비슷하다.
첫 번째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아이돌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취향이 갈릴지언정 문제는 없는데 이 경우는 유의미한 메시지는 의문인 채 아이돌만 도구화된다. 간단히 말하면 영상미 좋고, 보기에 무척 그럴싸해 보이지만 막상 든 게 없다. 열심인데 이상한 포인트에서 열심히라 희한하게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케이스.
이건 가수를 위해서라기보단 누군가의 자기만족일 확률이 더없이 크다. 아이돌이 출연만 하는 영상미뿐인 뮤비 어디까지 해볼 수 있나.. 뭐 이런 느낌.
이거야말로 컨셉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컨셉에 매몰됐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뮤직비디오가 영화 같다는 말이 누군가에겐 칭찬이겠지만 도무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돌을 도구화시킨 결과물이 유의미하지도 않고. 그러므로 영화 같을 뿐 영화도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아무리 돈을 쓴다 해도 가수가 주인공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의의를 해괴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는 축 중 하나인데 작품이라는 번드르르한 겉멋에 속 빈 강정과 다름없다는 걸 눈치채기 힘든 모양이다. 근본적인 개선이 쉽지 않다.
그것만 고치면 된다 생각하게 되지만 개선이 쉽지 않은 이유는 엇나간 주제와 상관없이 돈을 들이는 대로 돌아오는 비주얼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겐 가장 쉽고 훌륭한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눈이 높아져있을 테니 그런 걸 포기하는 것도 힘들 수 있겠고.
공들여 어필해야 할 건 컨셉에 잡아먹힌 영상작품이 아니라 아이돌이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드라마타이즈는 어디까지나 적절히 활용해야하는 선택적 연출임을 잊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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