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깊이 잠겨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떤 때보다-사지가 굳어버린 것처럼 몇 개월째 방에 틀어박혀 불어 가는 시간에 허우적대지도 못한 채 익사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무거운 손발을 움직인답시고 발악하다 또다시 지옥 같은 굴레에 빠지느니 이대로 죽는 게 좋겠다고, 방법도 불분명한 자포자기가 현답처럼 머리에 떠오르던 시기였다.
처음엔 두어 달 쉬면 저번처럼 나아질 것이라 믿었던 듯 별말 없이 내버려 두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어서 하지 않으려는 내색이 노골적인 모습에 시작된 잔소리가 어느덧 부탁인지 애원인지 헷갈리는 것으로 변했던 날 즈음이었던가. 기운이며 의지 따위는 메말랐는데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게 버거워 잠깐 의자에 기대앉아있었을 뿐인데, 이내 다시 움직여야 할 내 몸이 말 그대로 돌처럼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던 때쯤이었던가.
겨울을 맞기 직전 여태 남들이 몇 번을 말해도 저어하던 귀를 뚫었다. 남들에게 끊임없이 지적받다 상황에 떠밀려 스스로 선택했다는 감각은 전무한 결정을 하느니, 반항심이나 분노라 일컬을 충동에 의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후회하지 않을 것이 눈에 선해서였다.
어렸을 적 귀를 다친 경험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성격 때문인지 나름대로 진지했던 무섭다, 아플 것 같다, 찢어질 것 같다, 관리를 못 할 것 같다... 이런 이유는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만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귀를 뚫든가 귀를 뚫지 않아도 되는 나를 조만간 무슨 수라도 써서 만들어내든-둘 중 하나는 해내야 끝날 마냥 상황이 반복됐고 거절이 마땅하지 않은 틈이라도 보였다간 금방이라도 누구 손에 끌려가 어느새 귀를 뚫게 될 것 같은, 공포와 아주 유사한 불안이 시작됐다.
당장 눈앞의 신입이 그러지 않았는가. 거부감이 없다는 이유로 다음날 바로 귀걸이와 피어싱이 몇 개 달리고, 다른 날에는 문신이 생겨있고... 아무렇지 않은 기색의 신입을 지켜보다 등줄기부터 목덜미까지 섬뜩함이 스쳤다. 내 일이라고 다를 것은 없겠지.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을 거란 상식을 들이대 봐야 뭣도 모르는 겁쟁이, 혹은 별난 인간 취급이 깔린 지적과 권유를 견디지 못한 내가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될 날이 언제일지 가늠되지 않았다. 그게 난 정말로 무서웠다.
일을 그만두고 머잖아 피어싱 샵을 찾은 나는 사진을 보여주며 반드시 이렇게 귀를 뚫고 싶다고, 그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피어싱 샵에 몇 번이고 요구했다. 물론 큰일 날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과 똑같은 자리에 귀를 뚫고 싶었으니까.
그래그래. 아이돌. 사람 흉내조차 어설픈 내가 유일하게 찾은 위안 말이야.
난 이 상황에서도 귀걸이를 할 수 있단 이유만으로는 절대 귀를 뚫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모양을 한다는 의미 부여. 거기에 같이 가 줄 사람까지 생기니 겨우 내 의지로 발을 뗄 용기가 났다. 그러나 아는 것 없고 겁을 집어먹은 반면 요구는 유난스러운 고객이었던 탓에 직원과 나는 쉽게 진전되지 않는 대화를 나눠야 했다. 사람마다 귀 모양이 다른 관계로 자리만 따라 해 봤자 비슷한 느낌이 되는 건 아니라나 뭐라나. 그러니까 비슷하게 만들어주세요.
그런 나를 보면서도 같이 있던 친구는 참견하거나 닦달하지 않았다. 이게 맞나? 뭐가 낫지? 우유부단함에 흠뻑 젖어 숨길 여력도 없이 어쩔 줄 몰라하는 내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 분명한데 짜증 없이 담백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의식하자 쇳덩이 같던 마음이 이상하게 조금 가뿐해지고 꽉 막혔던 시야까지 조금 트이는 듯했다. 진행되고 있는 건가 의문이었던 대화도 나누다 보니 흘러갔고, 어린아이들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일을 이렇게까지 심각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꼴이 한심하고 우스웠다. 하지만 내겐 그런 일이었다.
끌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귀를 뚫는 행위는 순식간에 끝났다. 가벼운 안내를 받았지만 진작의 예상대로 상처를 관리할 성의가 없었기에 오랜 시간 붓고 아파 힘들었다. 특히 한 번에 두 개를 뚫었던 왼쪽은 겨울이 끝날 무렵까지 쉽게 아물지 않아 고생스러웠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 부여가 없었거나 피어싱이 아닌 귀걸이였다면 불편함에 구멍을 막아버렸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겨울의 절반 이상을 누워 보내는 바람에 귀가 쓸리고 눌려 더 오래 힘들었는지도.
이어진 겨울도 평소다운 거라곤 없었다.
협소하고, 무언가 가득 차 있고, 모든 게 어질러진 방 안에서 고작 종이 반바닥을 채울까 말까시피 보이던 글. 이게 뭐라고 일주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신 나간 것처럼 골몰했던 짓도 결국 회피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게 매달렸지만 짧고 허접했던 자기소개뿐인, 단 한 번의 지원으로 성공을 바라다니. 당연하게도 연락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을 주고 최소한의 돈을 받는 대신 한 명의 사람이고픈 희망이 매일매일 다르게 박살 나는 일과로 돌아가야 한다며 알람이 울린 셈이다.
나는 또 어떤 곳에서 뭉개질까. 유독 외풍이 심한 방에서 맞아야 하는 봄은 반갑거나 아무렇지 않아야 할 텐데. 봄이란 계절을 미칠 듯 절망스럽게 느끼며 3월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다 어떤 계기였나, 잊고 살았는지 잊고 있지 않았던 거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회피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문득 군대에 가 있는 아이돌이 한 명 떠올랐다.
입대한 뒤 소식은 따로 안 찾아봤었으니 한 번 찾아봐야겠다. ...근데 군대 가면 원래 이렇게 감감무소식인가? 보통 군대 가 있을 때 팬들 보라고 미리 영상도 이것저것 찍어놓고 편지도 받을 텐데? 인스타도 거의 생존신고용에 가깝고. 내가 제대로 발을 안 걸치고 있어서 뭐가 안 보이는 거라기엔- 아. 부대 주소다.
부대 주소. 어떤 아이돌의 근황을 찾다 그것이 뇌리에 박힌 이후 안 그래도 한껏 이상한 내가 다른 쪽으로까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당시 한 명뿐이던 지인의 '같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생일이니까 공카에 편지 한 번 써달라'는 사소한 부탁을 계기로 그 관계를 파탄 낸 과거의 인간이, 손 편지를 쓰고 싶다는 욕구에 빠진 건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황당한 현실이라고밖에.
가지를 부러뜨려봤자 봄은 오겠지. 해 질 무렵 통창 너머로 보이는 벚꽃은 이중된 감정을 일으켰다. 대기시간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다 자리를 옮겨 얘기를 시작하고 첫 출근 일자를 정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전, 무언가를 떠올리고 짧게 고민한 뒤 근처 대형마트에 들러 편지지와 펜을 샀다. 맘에 차는 편지지가 보이지 않아도 뾰족한 수가 있나. 몇 없는 후보 안에서 뭐가 나을지 꽤 고민했다. 최대한 장식 없고. 핑크 말고.... 일단 사 본 것에 불과한 데다 출근하기로 한 날이 다음 주였기에 보낸다면 며칠 내로 써서 부쳐야 한다는 계산이 됐지만 가능한 일로 생각되진 않았다.
흐르는 시간을 멍하니 보내버린 뒤 그런 마음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모든 걸 구석에 처박아놓고 오래도록 방치하다 훗날 하찮고 처량한 기억으로 변질된 것을 확인한대도, 무언가 끄적거리려다 불현듯 허망함에 치를 떨며 모든 걸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해도 나란 인간이라면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시 변덕이 솟아난 나는 난생처음 손 편지를 썼다. 그를 철저히 화면으로만 접한 걸로 모자라 무대 위 아이돌이 아닌 모습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주제에 그러고 싶었다. 무대 위의 모습만 보고도 그에게 아주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우선 핸드폰 메모에 내용을 쓰고 종이로 옮겨적으려 했는데, 편지가 처음인 것과 더불어 팬레터를 쓰는 일은 아이돌을 좋아한 세월 간 몇 수십 번 상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어려웠다. 당최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른 팬들은 어떤 말을 팬레터에 쓸까? 문득 솟은 궁금증에 인터넷을 뒤졌다. 몇 개의 팬카페, 이야기를 확인해 보니 대체로 팬들의 편지란 팬들 자신의 일상에 좋아하는 아이돌을 포함하는 것 같았다. 팬레터 하나하나가 팬 개개인의 하루 혹은 여러 날의 이야기를 별과 같은 그에게 공유하며 친밀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한 매개체로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팬레터를 쓸 사유가 마땅치 않은 걸로 모자라 쓰면 안 되는 종류의 사람이란 결론이 강하게 떠올랐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는 대체 왜 무겁디무겁게 첫 편지의 운을 떼려 하는지. 이것을 엄두조차 내지 않았던 이유를 곱씹었다.
나는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받을 셀 수 없이 많은 편지 중 고작 내가 보낸 종이 한 장을 인상 깊게 보거나 기억하리라 단정 짓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혹여라도 편지를 읽다 이런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며, 자신을 좋아한다고 인식할 찰나를 떠올리기만 하면 터져버리는 끔찍함에 뇌가 아득해지는 까닭이다.
정말 두렵고 끔찍한 일이야. 비단 편지만의 일이 아니다. 그를 현실에서 바라보는 것,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의 얘기를 공개적으로 써놓는 것, 그와 팬의 소통 공간에 댓글을 다는 것 등 존재가 드러날 가능성이라도 있어 보이는 전부를 필사적으로 회피했다. 기억되려 하든 그러지 않든 무의미할 현실을 알고도. 아이돌이 나를 알게 될까 우려하는 망상에 빠져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반경으로 생각되는 것에 털끝 하나 들어가지 않고 싶은, 내가 노출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렬히 거부하는 방향에 무척 가까웠다.
그래서 아이돌을 좋아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들이 실재하는지 눈으로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액정을 두고 나누는 소통조차 나란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인 건 마찬가지여서 가끔 어떤 충동을 참다 실패해 라이브 방송에 댓글 몇 개라도 남긴 날이면 한동안 쏟아지는 후회와 죄의식을 번번이 감당해야 했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조심해야지... 다짐하면서.
좋아할수록 고통스러운 일방적인 관계. 이런 생각과 감정이 비정상이란 걸 모를 리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에 그치지 않고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파악되는 전부를 몇 번이든 의심하고 검토해야 했다.
왜 아이돌에 연연하는 걸까. 잠깐 생각에 잠기자 또 다른 생각이 대답을 던졌다.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으며 살 수 없다. 무척 어렸을 때부터 이어진 나만의 탈출구, 대피처, 위안, 산소... 어릴 적부터 아이돌을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성인이 되고부터 아이돌이 그 역할을 갖게 되었지. 시작은 그저 우연이라 말할 정도의 계기더라도 질림 없이 긴 시간 좋아하고 있는 걸 보면 나의 특징적인 성향과 취향에 아이돌이란 개념이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예를 들어- 그래. 무대 위의 아이돌에게선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이 연출 아래인 시간과 인물. 현실과는 도통 가깝지 않은 그것을 킬링타임 이상의 가치로 사랑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 낭비, 정신 못 차린 사람 취급당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평가며 취급은 이상할 것 하나 없었다. 아주 좋아하는 수준조차 아니라 이게 없으면 나란 인간을 채워줄 것이 없어진다고, 금세 현실에 목 졸려 숨 쉴 수 없을 것이 분명한 내가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져 슬펐다면 모를까.
그러나 아이돌은 무대 위 그 순간을 위한 존재라며 강렬히 반짝여서 인간적이지 않은 만큼,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수록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난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뇌에 각인된 것처럼 절대 스스로는 가질 수 없는 빛을 찾고, 무엇보다 가까이함으로써 어리석게도 그것을 가질 수 있다 착각하거나 밝고 따뜻한 기운을 턱도 없이 얻어보고자 하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욕망을 거쳐 지금에 이른 것만 같다.
그건 무척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었다. 내 안의 명령과 본능은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까탈스러운 탓에 비슷한 것이 아닌 진짜 를 찾으려 해서, 잠깐 눈을 사로잡은 것이 진짜 일까의 여부를 시간이 지나면 싫어도 알게 되곤 했다. 내가 '가짜'니까 알 수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은 나를 아주 강력히 현실에서 떼어내 무대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빛을 향해 뛰어들다 타죽는 날벌레들의 기억이 낯설지 않다. 이들의 심정을 무엇보다 이해하는 주제에 다른 점이 있담 내게는 진정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 잔해와 날갯짓에선 목숨이나 종족 번식 따위의 중대함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용기, 비장함, 아니면 이들에게 빛은 그런 것보다 유의미한지도 모른다는 기이한 사실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이토록 끌리면서도 달려들기는커녕 그 빛이 나로 인해 오염될 것만 같다는 사념이 머리를 지배했고, 눌러왔던 치부와 죄악감이 피부를 뚫고 올라오면 돌이키지 못하게 박살 날 것이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렇지만 그에게 마음과 생각을 너무도 절실히 전하고 싶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를 틈틈이 지켜보다 불현듯 진짜 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돌의 무대는 대략 3분 남짓에 불과하다. 잠깐 정신이 팔려 시선을 돌리기만 해도 끝날 시간. 이렇게나 짧은 찰나에 희열감으로 뇌가 절어버리는 경험이란 대단히 중독적이어서, 그런 순간을 만들어 줄 법한 인물이란 예감이 들면 그 아이돌 그룹이 출연한 음악방송이며 직캠 등의 무대 영상 전부를 끌어모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으로 소화해 내는 일이 즐겁고 설레어 빠져버린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적게는 몇십, 많게는 몇백 개에 이르는 무대 영상을 능력이 닿는 데까지 모아놓고 시간이 나는 대로 탐닉하는 행위-를 몇 년에 걸쳐 몇 번이나 반복하며 알게 되었다. 진짜 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언뜻 눈에 띄는 인물인 듯했지만 다른 무대를 보고 난 뒤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단 사실에 입이 썼던 때, 무대장인이라는 수식어에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인물, 좋은 무대를 보여준 인물임에도 다시는 그런 순간을 만들지 않을 때의 실망감.... 이런 경험에 잔뜩 지쳐있던 내가 그를 찾은 것이다.
모든 것이 짜 맞춰진 무대를 인형극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 능력이 있고, 그 힘으로 언제든 나를 현실에서 잡아 뜯어줄 남자.
길고 힘들었던 건 결국 그를 찾아냈을 때의 기쁨을 위해서였던 걸까? 진짜 라면 스러짐 없이 빛나리란 믿음이 그저 어리석은 이상, 아이 같은 바람이라 여겼던 시기에 그를 찾아낸 나는 기쁘다 못해 울고 싶어졌었다. 현실에서 유리되는 일마저 손쉽지 않아 타인이 필요한 것도, 그게 내 상상 속 철인에 불과한지 모른다는 생각에도 퍽 오래 괴로워했으니까.
나는 머리를 쥐어짜 나에 대한 것은 최소한의 맥락을 위한, 정말 흔하고 의미 없는 수준으로 줄이며 이런 인간임에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깊은 속내는 언급할 수 없게 되었지만 오히려 적절해 보였는데, 나의 사실과 진심은 대체로 타인에게 전달해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편지란 정말 어려운 거구나.
내용을 생각하는 것도 손으로 써 내려가기도 쉬운 게 하나 없었다. 아무리 정성껏 적어보려 해도 삐뚤빼뚤하고 어딘가 엉성한 글씨에, 이미 정리한 내용을 받아적고 있는데 왜 잘못 적는 실수를 몇 번이고 하고 있는지. 문제를 알고 있어도 고칠 수 없는 것이 답답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서두부터 악필을 고하며 걱정을 섞는 것뿐이었다.
택배가 아니라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는 건 처음이라 무척 이상한 기분에 빠졌다. 아니,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처음' 써 본 손 편지를 '난생처음' 보내는 거라 이런 기묘한 기분이 드는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밤낮이 뒤바뀐 내가 편지 때문에 억지로 일찍 일어난 상태여서 그저 앞뒤 없는 정신인 걸 수도.
경기도 파주시 문산우체국사서함 51, 5967부대 수색중대 1소대 상병 박준희.
나는 또 잘못했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발악하던 주제에 편지를 쓴 일에 이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서술하지 않는 짓에 열을 올려놓고 봉투 겉면에 충동적으로 닉네임을 적었다. 편지가 말하는 것 같았다. 것 봐, 역시 나도....
우체국에 도착하고 새 봉투에 주소를 적으며 무언가 잘못됐단 걸 알게 되었다.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보내는 사람도 주소와 이름을 제대로 써야 하는데, 그러면 이름과 닉네임 둘 다 빠트리지 않고 적어 보내는 꼴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봉한 기존의 편지를 당장 뜯어 버리고 편지지만 새 봉투에 넣어서- ...이런 번거로운 행동을 하기엔 정신도 기력도 부족했고 시간조차 빠듯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끝없이 떠오르는 경고를 애써 무시하며 편지를 부쳤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발걸음마다 현실감이 부족해서, 바닥을 딛고 있는 게 아니라 쿠션이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둥실한 감각에 빠졌고 이어서는 지금의 선택과 결정을 곱씹게 되었다. 역시 잘못된 거 같아. 그래도 보내고 싶었어. 하지만 편지는 내 손을 떠났으니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봐야 보낸 편지가 어디서 어떻게든 분실되길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적은 주소에 문제가 있거나, 천재지변을 만나거나, 정말 분실이 되지 않았다면 그에게 도착한다니. 눈앞에서 사라진 편지는 생각하면 할수록 망상 속의 물건처럼 느껴졌고 이 모든 게 망상이었다 진지하게 믿고 싶어질 즘 그의 부대 근처 우체국에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편지를 받더라도 읽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니면, 직접 받기 전 부대에서 검열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적인 발상들의 설득력을 따져보다 가장 현실성 있는 결론으로 고른 것은 그가 내 편지를 읽더라도 가벼이 눈으로 훑은 후 두 번 다시 기억할 일 없는 종이 쪼가리 하나에 불과하리라는 생각이었다.